제5장

“자, 어서 앉아. 네가 좋아하는 걸로 일부러 시켰어. 오늘 그렇게 힘들었으니 엄청 배고팠겠다.”

서지연이 그녀를 잡아당겨 자리에 앉히고는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김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양하지 않고 바로 젓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음식을 먹으며 대답했다. “응, 정말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그 수술 때문에 점심도 못 먹었거든…….”

이민지와 말싸움을 할 때는 통쾌했지만, 그 수술을 하는 동안 정신이 얼마나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는지는 김우미 자신만이 알았다.

수술 시간이 길었고, 중간에 다른 의사로 교체할 수도 없었기에 점심 식사는 당연히 거를 수밖에 없었다.

서지연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픈 듯 말했다. “고생했네, 고생했어. 그럼 많이 먹어!”

그녀는 김우미가 좋아하는 반찬을 집어주었다.

김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분노를 식욕으로 바꾸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그제야 서지연과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두 사람은 4년 전, 해외 연수에서 처음 만났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무엇이든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서지연이 물었다. “이번에 네가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해성시에 얼마나 있어야 해?”

김우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아. 짧으면 두세 달, 길면 반년에서 일 년 정도.”

프로젝트라는 것이 원래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하물며 이번 신약 개발은 난관이 좀 있었다.

서지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뻐하며 말했다. “그거 정말 잘됐다! 네가 여기 있으면 나도 친구가 생기잖아! 맞다, 이따 저녁 다 먹고 내가 친구 몇 명 소개해 줄게. 전에 네가 나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던 희귀 약재 두 가지 말이야, 해성시 정 씨 집안에 물어봤는데 마침 오늘 그 집 도련님도 와! 한번 얘기해 봐!”

김우미는 오늘 이미 충분히 지쳐서 저녁 식사 후 바로 돌아가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지연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마음을 바꿨다. “좋아. 그렇게 오랫동안 찾았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리하여 저녁 식사 후, 김우미는 서지연과 함께 한 고급 클럽으로 향했다.

그들이 막 도착했을 때, 차 한 대가 클럽 문 앞에 멈춰 섰다.

온 사람은 바로 박연주였다.

그는 오늘 이곳에서 고객과 미팅이 있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다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가…… 또 김우미의 모습을 본 건가?

또 잘못 본 것일까?

지훈이 차에서 내린 후, 그가 움직이지 않자 물었다. “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또 눈이 안 보이십니까?”

박연주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 가자.”

“네.”

지훈은 대답하고 서둘러 그를 뒤따랐다.

김우미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서지연과 함께 룸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나 옷차림을 보아하니 신분이 보통이 아닌 듯했다.

서지연이 그들을 향해 소리치자, 그녀를 본 사람들이 즉시 반갑게 맞이했다.

“너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우리 한참 전에 왔는데.”

“지각했으니 알아서 원샷해!”

친구들이 농담을 던지자 서지연도 지지 않고 바로 말했다. “좋아, 마시면 되지!”

그녀는 칵테일 한 잔을 받아 들고 호기롭게 단숨에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참, 소개하는 걸 깜빡했네. 이쪽은 내 절친 김우미고, 직업은 의사야.”

사람들은 김우미의 진짜 신분은 몰랐지만, 서지연의 친구라는 말에 모두들 꽤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와, 엄청난 미인이시네요!!!”

“김우미 씨,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면 카카오톡 친구 추가해도 될까요…….”

“다 우리 식구니까 편하게 놀아요. 너무 어색해하지 말고요.”

그들은 김우미를 친근하게 맞이했다.

김우미도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자, 너희들 먼저 놀고 있어. 난 우미랑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서지연이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김우미의 팔짱을 끼고 그녀를 비범한 분위기의 한 남자 곁으로 데려가 앉혔다.

“우주 오빠, 이쪽이 내가 말했던 그 김 명의야!”

김우미는 눈앞의 수려한 이목구비에 온화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를 보며, 이 사람이 지연이 말한 해성시 정 씨 집안의 도련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먼저 상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정우주 씨.”

정우주가 겸손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발표하신 ‘고대 의술의 침구요법’ 논문을 봤는데, 실로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김 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본인이 이렇게 젊으실 줄은 몰랐네요.”

김우미는 겸손하면서도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우주 씨, 과찬이십니다.”

정우주는 웃으며 말했다. “칭찬은 이쯤 하죠. 지연이가 희귀 약재를 구하신다고 하더군요. 마침 저희 집 약초원에서 몇 년 전 십여 그루를 배양해 낸 게 있는데, 확실히 귀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김우미 씨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 드리는 것도 괜찮은 거래죠. 나중에 시간 잡아서 사람을 보내 가져가게 하세요! 괜찮으시다면 연락처 좀 주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김우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휴대폰을 꺼내 그의 연락처를 추가했다.

본론을 마치자 두 사람은 점점 친해졌고, 분위기는 제법 화기애애했다.

오늘은 주로 친구들끼리의 모임이었기에, 다들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즐거운 분위기에 휩쓸려 김우미도 몇 잔 따라 마셨다.

하지만 그녀는 술이 약한 편이라, 도수가 낮은 술이었음에도 금세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우미야, 한 잔 더 할래?”

서지연이 위스키 병을 들고 김우미에게 따라주려 했다.

김우미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더는 못 마셔. 슬슬 취기가 오르네.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어.”

“취했어? 같이 가줄까?”

서지연은 그녀가 정말 취했을까 봐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김우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야. 넌 계속 놀아. 길 아니까 금방 돌아올게.”

“그래, 그럼 조심해.”

서지연은 더 말하지 않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김우미는 룸에서 나온 뒤 화장실로 가지 않고 비상계단 쪽으로 가서 바람을 쐤다.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자 이곳은 편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녀는 벽에 기댄 채 우리 소미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막 휴대폰을 꺼내 들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술에 취한 젊은 남자 두 명이 서로를 부축하며 걸어 나왔다.

이곳에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듯했다.

“여기에 왜 사람이…….”

그중 한 명이 중얼거리자마자, 다음 순간 눈앞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넋을 잃게 하는 외모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의 눈이 번뜩이며, 순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이쿠, 이거 미인이잖아…….”

“미인, 혼자 여기서 외롭지 않아? 여기 숨어 있는 것보다 우리랑 술이나 몇 잔 하고, 이따가 밖에서 재밌게 놀아줄까?”

상대방은 ‘놀아줄까’라고 말할 때 희롱하는 듯한 말투를 썼다.

그 눈빛 또한 줄곧 김우미의 몸매를 훑고 있었다.

마음속 생각이 무엇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김우미는 그들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재수 없게!’

이런 곳에서 술 취한 양아치 두 명을 마주치다니.

그녀는 상대할 생각이 없어 재빨리 휴대폰을 집어넣고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

하지만 두 남자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이, 미인. 오빠가 말하는데 안 들려?”

두 사람이 다가오자 역겨운 술 냄새가 풍겨와 김우미는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요! 당신들이랑 놀 생각 없으니까!”

그녀의 말투는 상당히 차가웠다.

하지만 이 두 주정뱅이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

이때, 복도 밖.

박연주는 사업 이야기를 마치고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릴 줄은 몰랐다.

병원과 클럽 앞에서 봤던 익숙한 뒷모습에 이어,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까지…….

이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닐 터였다.

박연주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지며 눈앞의 문을 쳐다보았다.

김우미, 너 맞지?

드디어 나타났구나